
린신은 가벼운 걸음걸이로 안채의 문을 지났다. 인기척도 내지 않고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에 안에서부터 달려나온 하인이 그 얼굴을 확인하고 웃어야할 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반길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는 하인의 태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린신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했다.
“안주인은 안에 계신가?”
하인의 얼굴에 단번에 그늘이 졌다.
“안주인이라니요, 주인께 들리겠습니다, 각주.”
“낮이나 밤이나 안채에 누워서 사람을 손끝으로 부리는데 그럼 안주인이지 뭘.”
“각주.”
제 유들유들한 농담은 대나무 톱으로 목을 켜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주지 않겠냐는 양 표정이 딱딱한 하인을 보며 린신은 모처럼 재롱을 부리려던 의지를 잃었다. 인왕상같은 표정으로 린신을 바라보던 시중인은 한숨을 푹 쉬었다.
“제발, 주인을 너무 자극하지 마십시오.”
“나같이 부드러운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하인이 얼굴을 찌푸린다.
“주인께서는 요즘 통 못 주무십니다.”
“잠을 못 자?”
“아닌 척 하십니다만 누구나 알 것입니다.”
문 바깥까지 억누른 비명이 절절 끓는데 노비들이라고 그를 못 전해들을 리가 없다고, 우직한 하인은 괴로운 얼굴을 했다. 린신의 미간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린신은 충직한 이가 짊어지고 있는 고뇌나 고통의 무게를 나눌 마음이 없었다. 한 걸음 살짝 뒤로 물러나 린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 내가 아주 혈을 짚어 기절시켜주지. 그러면 정말로 시체처럼 아예 눈도 못뜨고 잠들 걸.”
“소각주!”
“농담이네. 주인 닮아서 융통성 없기는.”
린신은 내뱉듯이 말하고 안으로 얌전히 걸어들어갔다. 말리지도 못하는 이의 시선은 등 뒤에서 따라붙었으나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발걸음이 얌전하다고 하여 그 속까지도 그렇지는 않았던 것이다. 답답한 자식같으니. 린신은 혀를 차며 안채로 향했다.
문 앞에 서서 그는 잠시 망설였다. 하인의 애걸을 들어줄 만큼 좋은 성격은 못되었으나 근래의 환자는 가장 아프고 괴로울 시기라 독을 품은 것마냥 날이 서 있었다. 한들대는 가벼운 걸음으로 문을 열어제꼈다가 그 화를 산 일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화를 내는 거야 상관없지만 치료가 늦어지면 곤란하지. 문 앞에서 잠깐 망설이던 린신은 몸을 돌려서 창문가에 쑥 발을 집어넣었다.
“나왔어.”
“...”
린신의 기대와 다르게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우스운 꼴을 보고도 병자는 웃음 하나 띄우지 않고 붕대를 감은 꼴로 린신을 노려보았다. 화로를 있는 대로 끌어다놓은 병상 위에서도 꼿꼿하게 앉은 표정에는 죽은 사람마냥 핏기가 없었다.
“제발 좀 누워있으랬더니. 시체 같은 몸뚱이에 열기를 돌게 하는 게 쉬운 일인줄 알아?”
린신은 부러 정색하고 그렇게 말했다.
“치료를 하러 왔으면 치료나 해.”
차가운 남자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한독의 치료를 시작한 이후로 언제나 린신은 환자가 손잡이가 없는 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든 쥐는 사람을 죄 베어버릴 것처럼 날을 세워가지고는. 의원은 욱하는 마음에 눈썹을 찌푸렸다.
“의원에게 목을 내맡기는 병자가 이런 식으로 의원을 대해도 돼?”
그는 귀신같이 형형한 눈을 하고 차갑게 웃었다.
“내가 입 속의 혀같이 군다고 내 목을 자르지 않을 사람이기는 해?”
창문으로 오가는 행색이 의원의 대접을 받고 싶은 게 아니라 도둑 취급을 받고 싶어 하는 꼴이잖아. 혀가 돌아가기 시작한 후로 환자의 독설은 한겨울의 만년설보다도 싸늘했으나, 린신은 늘 그랬듯이 야유 섞인 웃음으로 흘려버렸다.
“그러는 너는, 의원에게 잘려나갈 목이 남아있기는 하고?”
목을 쳐서 들고 가도 아무런 상이 못될 텐데 누가 탐을 내겠어. 병자는 말이 없었고 린신은 한가로운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아직도 자기가 적우영의 수장이고 황가의 임수인줄 아나본데, 그 쪽은 지금 무명이고 누워있든 서있든 간에 어린아이 손으로도 죽일 수 있는 약골이야.”
다 타버리고도 여전히 뜨거운 숯처럼 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